오늘의 기사를 쓰기에 앞서 독자들께 사죄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제가 지난 2월부터 최일선 행정의 공직 경험을 갖게 돼서 시사에 대해 논평을 할 수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만필나라 기사를 전혀 올리지 못했습니다만, 이제 다시 언론인으로 돌아오게 됐습니다. 아직 사무실의 일이 남아있기는 합니다만, 본지 창간 1주년인 10월9일을 아무 글 없이 넘길 수 없고, 또 오늘날의 시사나 공무에 따른 이해와 전혀 무관한 글까지 모두 쓸 수 없는 것은 아니어서 참으로 면목 없는 오랜 공백 끝에 글을 올리게 됐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앞으로도 많은 성원과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1회>


올해 10월1일은 음력 8월25일이었다.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 즉 무인정사가 발생한지 623주년이 되는 날이다.

만필자는 훗날 태종대왕이 되는 정안군 이방원의 이날 동선을 따라가 봤다.

근정전의 왼편에 인왕산, 오른편에 북악산이 보인다.
근정전의 왼편에 인왕산, 오른편에 북악산이 보인다.
인왕산과 근정전.
인왕산과 근정전.
경복궁에서 바라 본 북악산.
경복궁에서 바라 본 북악산.

가을의 햇살이 유난히 금빛 가득한 날이었다. 눈부신 해가 인왕산을 넘어가면서 강한 역광을 던지는 바람에 이 산 특유의 장중한 표정을 제대로 담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북악산만큼은 금빛을 제대로 받아 더욱 화사한 자태를 과시했다.

 

근정문 너머 근정전이 보인다.
근정문 너머 근정전이 보인다.
근정전 어탑은 임금이 앉았을때 남산과 눈높이를 맞추게 된다고 한다.
근정전 어탑은 임금이 앉았을때 남산과 눈높이를 맞추게 된다고 한다.

근정문 너머 근정전이 보인다. 저 곳의 정중앙에 있는 임금의 어좌에 앉으면 남산이 눈높이에 닿도록 돼 있다고 한다.

 

임금이 평소 정무를 보는 사정전의 용상.
임금이 평소 정무를 보는 사정전의 용상.

근정전은 신년조회나 외국사신 맞을 때를 제외하면 별로 쓰일 일이 없는 곳이다. 그래서 사극에 근정전이 등장하는 장면이 별로 없다. 사극에서 익히 보던 왕이 정사를 보살피는 편전이 사정전이다.

 

임금의 침전인 강녕전.
임금의 침전인 강녕전.
강녕전 창너머 임금의 침실이 보인다.
강녕전 창너머 임금의 침실이 보인다.

그러나 정안군 이방원의 아버지 태조 이성계는 8월 내내 근정전이든, 사정전이든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성계는 대전인 강녕전에서 죽음과의 힘든 싸움을 벌이며 누워있었다. 그의 병세가 너무나 위중해 대궐 안팎에서는 개국 이후 최초 임금의 승하를 대비하고 있었다.
 

왕후의 처소인 교태전.
왕후의 처소인 교태전.

이성계가 속세를 훌훌 털고 떠나기 한층 더 마음이 무거운 것은 세자 방석이 아직 새 왕조의 험난한 세파를 헤쳐가기에는 너무나 어리다는 점이었다. 방석의 생모 신덕왕후 강씨가 살아있었다면 그 부담이 덜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성계보다 스물한 살이나 젊었던 왕후는 2년 전에 먼저 세상을 떠났다. 중궁인 교태전에 먼저 주인 없는 세월이 찾아왔던 것이다.

 

경복궁에서 서문인 영추문으로 나가는 길에 있는 수정전.
경복궁에서 서문인 영추문으로 나가는 길에 있는 수정전.

왕의 살아있는 아들 가운데 맏형인 영안군 방과(훗날의 정종), 익안군 방의, 회안군 방간, 그리고 정안군 방원이 편찮은 부왕을 뵙겠다고 해도 거듭 물리치던 왕이 느닷없이 모두 숙직하라는 대기령을 내렸다. 이들 사형제는 세자 방석의 이복형들이다.

사형제가 임종을 대비해 머물렀을 법한 공간을 지금의 경복궁 내에서는 찾기 어렵다. 서문인 영추문으로 나가는 길 어디쯤 일 것 같은데 지금은 학술적 목적으로 쓰인 수정전과 오늘날 지은 편의시설뿐이다.

만약 부왕이 회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면, 승하하기 직전의 짧은 순간이 방원에게 거병의 유일한 기회가 될 것이다. 어찌됐든 이성계가 살아있는 한 정도전은 그의 아들을 누구 하나도 헤치지 못한다. 아무리 권신이라도 임금의 자식을 마음대로 죽일 정도로 권력을 휘두른 사람은 없다. 그러나 부왕이 죽고 나면 정도전에게는 더 이상 거리낄 것이 없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옛날 정몽주 죽이듯 정도전을 죽일 수는 없다. 뜻밖에 아버지가 건강을 되찾는다면 공신을 멋대로 죽인 대역죄를 아비도 용서해주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방원에게 바늘구멍과 같은 유일한 기회는 임금의 승하가 임박한 시점에만 오는 것이었다. 그날을 방원은 이날 밤으로 이미 정해두고 있었다.

경복궁에서 바라 본 인왕산.
경복궁에서 바라 본 인왕산.

이날 방원은 두 차례 경복궁의 서문인 영추문을 통해 경복궁을 벗어났다. 거사를 도모하고 있는 그의 시야에 인왕산의 가득한 산세가 두 차례 펼쳐졌던 것이다.

첫번째 출궁은 집에서 부인 민씨가 갑자기 병이 났다는 기별을 받고서다. 그러나 이는 방원이 중요한 날 궁 안에 갇힐 것을 면하는 명분으로 미리 측근들과 약속해 놓았던 행동이다. 그는 처남인 민무질과 상황을 살펴보고 대궐로 돌아왔다.

 

정안군 이방원은 이날 인왕산 너머로 지는 햇살을 받으며 두번째로 영추문을 통해 출궁했다. 그 길은 이제 물러설 수 없는 결행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정안군 이방원은 이날 인왕산 너머로 지는 햇살을 받으며 두번째로 영추문을 통해 출궁했다. 그 길은 이제 물러설 수 없는 결행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날이 저물 무렵, 방원은 “옛 제도에 궁중(宮中)의 여러 문에서는 밤에는 반드시 등불을 밝혔는데, 지금 보니 궁문에 등불이 없다”는 이유로 영안군 일행뿐만 아니라 세자의 동복형인 방번까지도 대궐을 벗어나야 한다고 재촉했다. 보기에 따라 이 순간이 방원으로서 돌이킬 수 없는 최초의 주사위를 던진 것이다. 방원의 동복형제들은 방원을 따라 나섰으나 방번은 끝내 이를 거절하고 궐내로 들어갔다.

드디어 거사의 첫 걸음에 나선 방원이 말을 달려 영추문을 벗어났다. 영추문 너머 인왕산 너머 저물어가는 가을해가 여전히 금빛 햇살을 던지고 있었다.

2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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