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역대 최고 한국은행 총재인 고 솔뫼 전철환 총재는 생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술은 완전히 깨서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취한 채 잠이 들면 숙취가 된다.”

그리고 이런 말씀도 덧붙였다.

“술을 깨는 최고 방법은 물 마시기, 그리고 걷기다.”

훌륭한 어른들의 말씀에 공감하면서도 이를 실행하기는 쉽지 않지만 전철환 총재의 이 말씀만은 충실히 따르고 있는 만필자다. 이달 초 어느 날 강남 어느 곳에서 거나하게 한 잔을 한 날도 마찬가지였다.

언주역에서 출발해 조금 걷다보면 다리도 피곤하고 술기운도 말끔히 정돈되려니 했는데 동호대교가 점점 가까워졌다.

언젠가 이 다리만큼은 한 번 걸어서 건너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서울 압구정동 남단에서 바라본 동호대교. /장경순 만필가
서울 압구정동 남단에서 바라본 동호대교. /장경순 만필가

 

동호대교를 걸어 다녀 본 사람들은 이게 뭐 이리 대단한 일이라고 각을 세우냐는 분도 있을 것이다.

사실 만필자는 20대 어느 날 걸어서 한강다리를 건너다 개고생한 적이 있다. 1985년 11월 동아리 친구들 20여 명과 함께 이태원에서 술을 마시고 한밤중에 한남대교를 넘어 고속터미널까지 걸어가 해산한 적이 있다. 지금도 기억하는 건 그날 밤 날씨가 꽤 추웠다는 것, 그리고 다리 위에서는 아무리 걸어도 길이 줄지를 않았다는 느낌이다. 기억 속의 느낌은 한 두 시간은 걸린 듯 했다.

그 후로 한강다리는 함부로 걸어서 지날 일이 아니라고 여기면서 살았지만, 차타고 동호대교를 지날 때는 좀 느낌이 달랐다. 어쩐지 이 다리는 조금이나마 더 강의 상류여서 그런지 길이가 한남대교보다 짧은 듯 했다.

하지만  동호대교가 더 짧아 보인다는 것은 착시고 한남대교를 한 두 시간 걸려 걸었다는 것은 기억의 교란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11월초답지 않게 무지하게 쌀쌀했던 날씨 속에 탁 트인 강 한복판의 바람이 더욱 매서웠으니 가는 길이 더욱 멀리 느껴진 모양이다. 더구나 스무 살 안팎 젊은 애들이 술기운에 온갖 짓궂은 장난을 쳐대면서 걸어간 길이니 운동삼아 건너는 사람들 자세와도 한참 달랐다.

검색을 해보면 한남대교는 919미터, 동호대교는 1095미터라고 한다. 겉보기와 다르게 동호대교가 더 긴 것이다.

이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된 것이니 이번에 다리의 남단에 도착했을 때는 35년 전처럼 족히 한 시간을 걸어갈 각오를 해야만 했다.

새벽 3시32분 남단에서 출발해 북단에 도착한 건 3시58분이었다. 초여름이지만 한밤중에는 매우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그리 빠르지 않은 걸음으로 26분만에 건넜다.

30분도 안 걸리는 거리를 35년 동안 한 두 시간 걸릴 것으로 두려워하며 살아온 것이다. 이로 인해 잘못된 정보를 외국여성들에게 전한 적도 있다. 약수동 네거리에서 압구정동 성형외과를 걸어갈 수 있냐고 묻는 이들에게 “걸어가려고 하면 내일 아침에나 도착할 것”이라고 얘기해 준 적이 있다.

보행도강에 대한 경외심으로 택시기사에게 커다란 신세를 진적도 있다. 한남대교를 건넌 바로 다음해 1986년, 군대 가기 전 대학 3학년 때다.

명륜동 학교 앞 오락실에서 새로 나온 게임에 한참 빠져있다가 개포동 집까지 가는 좌석버스 막차를 놓쳤다. 가진 돈은 1600원. 좌석버스 600원은 충분한 돈이지만 이 무렵 택시비는 4300원 정도가 나오는 거리였다.

궁리 끝에 일단 한강다리를 건너가고 나면 1600원으로 집까지 갈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동호대교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런데 이화동 동대문 지나면서 조금씩 소모되는 기력은 한강 건널 두려움을 더 큰 근심으로 만들었다.

마침내 동국대 후문 근처를 지나면서 결단을 내렸다. 이 돈으로 다리만 건너자. 역시 다리 건너는 것이 제일 큰 일이니 일단 강 건너편에만 도달하면 그 때부터 집에 갈 희망을 갖게 될 것으로 여겼다.

새벽길 지나가는 빈차를 세워 기사님에게 “동호대교 건너 개포동 방향으로 1600원어치만 가주세요”라고 말했다.

기사아저씨가 껄껄 웃으면서 “아니 어쩌다가 그리 되셨어?”라고 대답했다. 아저씨는 “구석 자리로 가 앉아 있어보셔. 내가 어떻게 함 가볼테니”라고 했다.

그때부터 택시는 방향을 한남대교 쪽으로 바꿨다. 이른바 ‘합승’이 존재하던 시절, 아저씨는 합승 손님이 많은 코스로 길을 바꿨던 것이다. 한남동 신사동 말죽거리(양재동)을 지나가면서 사람들이 계속 앞자리 옆자리로 탔다가 내렸다. 양재역에서 마지막 합승 손님이 내리고나서 내가 너무나 감사해 “고맙습니다 아저씨. 이제 저도 내릴께요”라고 했지만 아저씨는 “집앞까지 데려다 드릴테니 계속 앉아계셔”라고 말했다.

당시는 택시가 너무나 귀해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가기를 거부해도 할 말이 없던 시절이지만, 이날 기사님은 기분 좋은 영업을 하셨는지 나를 우리 동 앞에 내려주셨다. 갖고 있던 돈 1600원을 다 털어서 드리고 집에 들어갔다.

그날 이후로 나는 더더욱 택시에서 일체 말썽을 안 부린다.

글을 쓰고 보니 오늘이 고 솔뫼 전철환 한국은행 총재께서 타계하신 지 18주년이 되는 날이다. 13주기 때 총재님에 대한 글을 쓰던 날에는 JTBC의 ‘한끼줍쇼’ 팀이 우리 집을 찾아온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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